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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유산

나의 검색 기록도 디지털 유산일까?

by news84-1 2025. 7. 18.

죽은 뒤에도 남아 있는 나의 흔적, 검색기록은 유산이 될 수 있을까?

 

사람은 하루에도 수십, 수백 번 검색을 하죠. 오늘 점심 메뉴부터 건강 이상 증세, 은행 대출, 연애 고민, 정치 성향, 가족 갈등, 죽음에 대한 두려움까지 다양합니다. 게다가 우리가 타인에게는 감히 말하지 못하는 이야기들을 검색창에 남기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런 검색 기록은 고스란히 내 안의 진짜 모습, 감정, 두려움, 욕망을 드러내는데요. 그런데 내가 세상을 떠난다면 이 기록은 어떻게 되는 걸까요? 가족은 이 정보를 볼 수 있을까요? 아니면 지워야 할까요, 남겨야 할까요?

 

지금까지의 디지털 유산 논의는 대부분 SNS 계정, 유튜브 채널, 사진, 블로그 글처럼 눈에 보이는 콘텐츠 중심이었습니다. 하지만 검색기록은 콘텐츠가 아니라 행위의 기록이라 더 내밀하고 더 민감하며 더 나다운 흔적입니다.

그렇기에 유산이라는 측면에서 더 복잡한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부터 검색기록이라는 독특한 디지털 흔적이 죽음 이후 어떤 법적·사회적 위치에 놓이는지, 유족과 당사자의 권리는 어떻게 조율될 수 있는지, 그리고 우리가 미리 준비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깊이 있게 살펴보겠습니다.

 

검색기록은 디지털 유산일까?

 

검색기록은 법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질까? – 개인정보, 유산, 또는 아무것도 아닌가?

검색기록은 표면적으로는 단순한 브라우저 사용 이력이나 플랫폼 로그에 불과해 보이지만 법적으로 살펴보면 검색기록은 개인정보 보호법, 정보통신망법, 저작권법 그리고 경우에 따라 형법의 적용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우선, 검색기록은 특정 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정보가 포함될 경우 개인정보로 간주됩니다. 한국의 개인정보 보호법 제2조에 따르면 생존하는 개인에 관한 정보 중 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정보는 모두 보호 대상입니다. 다만, 이 법은 원칙적으로 사망자에게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죽은 사람의 검색기록은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없다는 뜻일까요?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2020년 대법원은 “사자의 개인정보도 일정한 조건 하에 유족의 권익 보호를 위해 보호될 수 있다”는 판결을 낸 바 있습니다. 즉, 고인의 명예나 사생활이 심각하게 훼손될 경우 유족이 일정 부분 정보를 통제하거나 삭제를 요구할 수 있는 가능성은 존재합니다.

 

하지만 검색기록은 고인의 명예와 무관한 경우가 많고 구체적인 법적 판례가 부족하여 실무에서는 여전히 회색지대에 놓여 있는데요. 또한 검색기록이 저작권이 있는 창작물도 아니기 때문에 재산적 가치로 인정받아 상속 대상이 되는 경우는 흔한 일이 아닙니다. 결국 법적으로도 검색기록은 디지털 유산으로 명확하게 분류되기 어려운 복합적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유족은 검색기록을 열람할 수 있는가? – 기술적 한계와 윤리적 고민

사망자의 검색기록에 접근하려는 유족은 기술적 장벽에 먼저 부딪힙니다. 대부분의 검색기록은 구글, 네이버, 크롬, 사파리, 모바일 브라우저 등에 저장되어 있으며 이들 플랫폼은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타인에게 검색 기록 접근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구글은 사용자가 사망했을 경우 휴면 계정 관리자를 사전에 설정해놓지 않으면 유족이라 해도 계정 내 검색 기록, 메일, 드라이브 파일 등 일체의 정보에 접근할 수 없도록 하고 있습니다.

 

또한 유족이 기기의 잠금을 풀었다고 해도 브라우저의 히스토리는 이미 삭제되어 있을 수 있고 클라우드에 동기화된 정보는 암호화되어 접근이 불가능한 경우도 많습니다. 즉, 가족이라도 사망자의 검색기록을 확인하기는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윤리적으로는 어떨까요? 누군가의 검색기록은 그 사람의 내면이 고스란히 담긴 일기장과도 같습니다.

 

예를 들어 “이혼하고 싶다”, “죽고 싶다”, “암 초기 증상”, “아들에게 유산을 안 주는 방법” 같은 검색어는 고인의 마지막 감정과 생각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유족이 이런 기록을 보았을 때 혼란, 슬픔, 분노, 상실감이 더욱 커질 수 있다는데요. 반대로 고인의 성향을 더 이해하고 남은 사람들의 상처를 치유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 결국 검색기록을 열람할 권리가 있는가 없는가는 법보다도 고인의 생전 의지와 가족 간의 신뢰라는 감정의 문제에 더 가깝습니다. 

 

검색기록을 유산처럼 관리할 수 있을까? – 데이터 정리와 사전 설정의 중요성

검색기록을 디지털 유산처럼 관리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당사자의 생전 준비입니다. 최근 구글, 애플, 페이스북 등은 모두 계정 사후 관리 기능을 제공하고 있는데요. 구글은 ‘Inactive Account Manager’ 기능을 통해 사용자가 사망 또는 장기 미사용 시 어떤 데이터를 누구에게 넘길지를 사전에 설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 기능을 활용하면 검색기록이나 위치기록, 유튜브 시청 기록 등도 전달 가능합니다. 

 

또한 크롬 브라우저나 네이버 앱에서도 기록 자동 삭제 주기 설정, 기록 보관 여부, 백업 주기 등을 조정할 수 있습니다. 사용자는 평소 자신의 브라우저 설정을 주기적으로 확인하고 본인의 기록이 남겨지기를 원하는지 아니면 사후 자동 삭제되도록 할지를 명확히 결정해두는 것이 좋습니다. 특히 검색기록에 민감한 정보가 포함된 경우 암호화된 저장소에 따로 백업하거나 기록 삭제를 유언장에 포함시키는 것도 가능합니다.

 

실제로 최근에는 디지털 유언장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트업이 늘고 있습니다. 이들은 사용자의 계정, 검색기록, 클라우드 데이터, SNS 메시지 등을 정리해주며 사망 시점에 유족에게 전달하거나 자동 삭제되도록 설정하는 기능을 제공합니다. 검색기록도 이제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당신이 어떤 사람으로 살았는지를 보여주는 정체성의 일부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무작정 숨기거나 모두 남기거나'가 아니라 당신의 의지대로 설계된 방식으로 정리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디지털 흔적의 주인은 누구인가 – 기억과 권리 사이에서 우리가 선택해야 할 것들

검색기록은 법적, 기술적으로도 또 정서적으로도 매우 복잡한 데이터를 대표합니다. 그것은 디지털 유산이기도 하고 사생활이기도 하며 죽은 자의 감정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정보가 사실은 누군가의 기억이자 유언이자 감정의 편린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 검색기록은 더 이상 가벼운 데이터가 아닙니다.

 

우리는 앞으로 더 많은 디지털 흔적을 남기게 될 것이며 그 중 다수는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만든 콘텐츠가 아니라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으려고 했던 데이터들입니다. 그리고 그런 데이터가 사망 이후 가족에게 넘어갔을 때 그것이 위로가 될지 상처가 될지는 미리 알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검색기록을 포함한 디지털 유산은 단순히 지워야 할 것도 남겨야 할 것도 아닌, 설계되어야 할 것입니다.

 

지금 당신이 검색창에 쓰는 단어 하나하나가 언젠가 디지털 유산이 될 수 있습니다. 그 유산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혼란이 아닌 따뜻한 기억이 되도록 지금 이 순간부터 자신의 디지털 흔적을 자각하고 스스로의 의지로 설계해보는 것은 어떨까 싶습니다. 검색기록도 결국은 '나'의 일부일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