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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유산

디지털 유산 관리인을 생전에 지정하면 생기는 문제들

by news84-1 2025. 7. 19.

디지털 유산 상속자 지정, 정말 현명한 선택일까?

디지털 시대에 접어들면서 사람들은 단순한 물리적 재산 외에도 다양한 형태의 디지털 자산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유튜브 채널, SNS 계정, 구글 드라이브, 아이클라우드, 인터넷 뱅킹, 이메일, 비트코인 지갑 등은 단지 데이터 저장소가 아니라 개인의 정체성과 자산, 관계, 기록을 모두 담고 있는 공간입니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사망 이후를 대비해 생전에 자신이 신뢰하는 인물에게 디지털 유산 관리자 혹은 계정 상속자를 지정해두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간과하고 있는 한 가지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디지털 유산 관리자를 지정하는 일이 오히려 가족 간의 갈등, 법적 충돌, 감정의 상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생전에 친구나 특정 자녀에게 디지털 자산의 관리권을 위임했을 때 남은 가족 구성원들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유언 내용과 상속법이 충돌할 경우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에 대한 깊은 고민이 부족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 글에서는 디지털 유산 관리인을 생전에 지정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실제 문제들과 사례를 중심으로 우리가 반드시 인식하고 대비해야 할 위험 요소들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디지털 유산 관리인 지정

문제점 ①: 상속자 지정이 가족 간 갈등을 일으킬 수 있다

 

디지털 유산 관리인을 가족이 아닌 제3자, 예를 들어 친구나 직원, 혹은 형제 중 한 사람에게만 지정했을 경우 다른 가족 구성원들은 소외감과 의심, 분노를 느낄 수 있습니다. 이는 특히 고인의 디지털 자산에 정서적 가치나 경제적 수익이 포함되어 있을 경우 더욱 심각한 갈등으로 번질 수 있는데요.

 

예를 들어, 한 유명 유튜버가 생전에 자신의 채널 관리를 절친한 친구에게 맡기겠다는 유언장을 작성했습니다. 이 친구는 유언장에 따라 고인이 남긴 영상 콘텐츠를 운영하며 수익금을 일부 기부하고 일부는 유지 관리 비용으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유족들은 “우리는 이 사실을 몰랐다”, “왜 가족이 아닌 친구가 콘텐츠 운영권을 가져갔냐”며 반발했고 결국 법적 분쟁으로 이어졌습니다.

 

문제의 핵심은 디지털 자산은 기술적 접근권과 법적 소유권이 분리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고인이 계정 관리자 권한을 친구에게 부여했다 하더라도 저작권이나 수익 권리는 민법상 법정 상속인에게 돌아가기 때문에 관리인은 사실상 운영은 가능하지만 소유권이 없는 복잡한 입장에 처하게 됩니다. 이러한 불균형은 쉽게 법적 충돌로 이어지고 남은 이들 사이에 씻을 수 없는 감정적 골을 남기게 되는 문제점이 있습니다. 

 

문제점 ②: 유언장과 플랫폼 정책이 충돌할 수 있다

또 다른 문제점은 고인이 작성한 유언장의 효력이 플랫폼의 정책과 일치하지 않을 경우입니다.

예를 들어 구글, 페이스북, 애플 등 주요 글로벌 플랫폼은 사망자의 계정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을 생전에 설정할 수 있도록 하지만 이 설정은 대부분 플랫폼 내부에서 유효할 뿐이며 법적으로 작성된 유언장 내용과 충돌할 경우 누구의 권리가 우선되는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습니다.

 

한 사례로 미국에서 한 작가가 사망 전에 자신의 이메일 계정 접근권을 조카에게 주겠다는 유언장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고인은 생전에 구글 계정의 휴면 계정 관리자(Inactive Account Manager) 기능을 설정하지 않았고 구글은 유언장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조카는 유언장에도 불구하고 계정에 접근하지 못했고 유족은 해당 계정에서 중요한 미출간 원고를 복구할 수 없었습니다.

 

이는 우리나라에서도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특히 국내는 디지털 유산 관련 법적 기준이 아직 마련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유언장이나 상속 계약의 효력보다 플랫폼의 내부 약관이 우선되는 사례가 증가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고인이 아무리 의사를 명확히 남겼더라도 플랫폼이 이를 따르지 않으면 실제 집행이 어려워지는 현실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문제점 ③: 관리인의 무지 또는 악의적 행동으로 인해 유산이 파괴될 수 있다

디지털 유산을 물리적 재산처럼 손쉽게 관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지정된 관리인이 디지털 자산의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기술적인 지식이 부족할 경우 콘텐츠가 손상되거나 중요한 데이터가 영구 삭제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관리인이 고인의 의도와는 다르게 콘텐츠를 상업적으로 이용하거나 불필요하게 삭제하는 등  왜곡된 방식으로 운영할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한 블로거가 생전에 자신의 블로그 운영 권한을 조카에게 위임했지만 조카는 관리 권한을 넘겨받은 후 기존 게시물을 일부 삭제하고 광고 수익 구조를 바꾸는 등 상업적 활용을 강화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고인의 기존 독자들이 반발했고 고인을 기리는 커뮤니티 내에서도 분열이 발생했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누구에게 넘길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 어떤 콘텐츠를 남기고 어떤 콘텐츠를 비공개로 전환할 것인지, 수익 분배는 어떻게 할 것인지 등 구체적인 운영 지침까지 문서화하고 공유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유산은 남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누군가에 의해 파괴되는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해결책: 디지털 유언장과 법적 명확화가 필요하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디지털 유언장의 제도적 인정입니다. 고인이 디지털 자산에 대해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권한을 넘기고 싶은지 구체적으로 기재한 유언장이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현재 대한민국 민법상 유언장은 재산에 대한 내용이 명확해야 하며 디지털 유산도 유산 목록에 포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디지털 유산의 범위와 구체적 집행 방식이 명확히 정리된 유언장은 드물고 이를 처리할 행정 시스템도 아직 미비합니다.

 

또한, 플랫폼과 법률 간의 중재 시스템이 필요하겠습니다. 예를 들어, 국가 또는 공공기관이 ‘디지털 자산 상속 중재 센터’를 설립하여 고인의 의사와 플랫폼의 약관 사이에서 합리적인 합의안을 제시할 수 있는 창구가 마련돼야 합니다. 동시에 디지털 유산 관리자에게는 일정한 책임과 권한의 기준이 설정되어야 하며 정보 삭제나 공개, 수익 분배 등의 결정에 있어서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는 지침이 필요하겠습니다.

 

궁극적으로 디지털 유산은 단순히 데이터를 넘기는 일이 아니라 사람 간의 신뢰, 감정, 권리를 정리하는 작업입니다. 따라서 고인은 생전에 누구를 신뢰하는지뿐만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나를 기억하게 할 것인지, 그리고 남은 사람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까지 고려해야 합니다. 이 작업이 진정한 디지털 상속 설계이며 앞으로 모든 사람이 경험하게 될 새로운 문화적 과제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