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언제부터 목소리라는 것을 자신의 자산으로 인식하게 되었을까요? 과거에는 누군가의 목소리를 영구히 보존한다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음성 인식 기술, AI 합성음, TTS(Text-to-Speech) 기술이 발전하면서 이제는 한 사람의 목소리를 데이터로 보존하고 심지어 그 목소리로 새로운 말을 만들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그리고 기술은 죽음을 넘어 목소리를 되살리고 있습니다. 이 변화는 단순한 기술의 진보를 넘어 윤리와 법, 그리고 인간관계 전반에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부모가 사망한 후 남겨진 음성 데이터를 통해 자녀가 그 목소리를 AI로 재현한다면 그것은 추억일까요, 모방일까요?
또는 생전에 동의 없이 수집된 음성 데이터를 회사나 타인이 활용한다면 그것은 저작권 침해일까요? 개인정보 침해일까요?
이처럼 개인의 목소리가 디지털화되어 유산처럼 남겨질 수 있는 현실은 아직 사회적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새로운 영역입니다. 이 글에서는 음성 데이터가 디지털 유산으로 어떻게 간주될 수 있는지, 기술과 윤리가 어디서 충돌하고 있는지, 그리고 개인이 생전에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를 중심으로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목소리는 이제 복제 가능한 자산이다 – 음성 합성 기술의 발전과 현실
과거의 음성은 단지 기록에 불과했지만 이제는 음성 자체가 재생산 가능한 자산이 되었습니다. 게다가 최근 AI 음성 기술은 특정인의 말투, 억양, 감정 표현까지 그대로 복제하는 수준에 도달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는 클로바 더빙(네이버), TTS Voice AI, ElevenLabs, Resemble.AI, VALL-E(마이크로소프트) 등이 있으며 이들 플랫폼은 1~2분 분량의 녹음만으로도 특정인의 목소리를 매우 유사하게 재현할 수 있습니다.
이 기술들은 음성 합성(TTS: Text to Speech)과 딥러닝 기반 음성 모델링을 활용하여 목소리 자체를 데이터화하고 학습시킵니다. 특정인의 목소리와 말투, 발음 습관, 문장 간 멈춤, 숨소리까지 분석해 완전히 새로운 문장을 그 사람처럼 말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 기술이 상용화되면서 연예인, 정치인, 유명 유튜버, 교육 강사 등 다양한 직군에서 AI 음성 활용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기술이 죽음 이후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고인이 남긴 유튜브 영상, 오디오 녹음, 음성 메시지 등은 모두 학습 데이터로 활용 가능하며 이를 통해 사망한 사람의 목소리로 새로운 문장을 만들어내는 것이 현실이 되었습니다. 어떤 가족은 이를 감정적 위로로 받아들이지만 다른 누군가는 죽은 사람의 말을 조작하는 행위로 받아들일 수도 있습니다. 기술은 중립적이지만 그 활용에는 늘 윤리적 해석이 따라붙습니다.
사후 목소리의 활용, 법적으로 문제는 없을까?
목소리는 이제 더이상 단순한 소리가 아닙니다. 법적으로는 인격권과 초상권,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저작인접권의 영역에 속할 수 있습니다. 특히 대한민국 대법원은 2021년 “사람의 목소리는 독립적인 인격표현 수단으로서 무단 이용 시 초상권 침해에 해당할 수 있다”는 판결을 내린 바 있습니다. 즉, 생존자일 경우 자신의 목소리를 다른 사람이 허락 없이 복제·사용할 경우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사망한 사람의 경우는 어떻게 될까? 한국의 개인정보 보호법은 사자(死者)에게는 원칙적으로 적용되지 않습니다. 초상권 역시 고인의 사망과 함께 소멸되며 형법상 명예훼손조차도 사망자에게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일부 민사적 보호는 유족이 고인의 권리를 간접적으로 주장하는 방식으로만 가능합니다.
이 말은 곧, 고인이 생전에 자신의 음성 데이터를 특정 방식으로 활용하지 말라는 의사를 남기지 않았다면 제3자가 사망자의 목소리를 AI로 재현하더라도 법적으로 이를 제재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예외적으로 유족이 사자의 명예나 정서적 고통을 근거로 민사소송을 제기할 수는 있지만 승소 가능성은 사례마다 달라집니다.
또한 저작권 측면에서 보자면 목소리 자체는 원칙적으로 보호받는 저작물은 아니지만 해당 음성이 담긴 오디도북이나, 강의, 노래 등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 해당 콘텐츠의 저작재산권은 상속되며 상속인이 무단 복제를 금지하거나 법적 조치를 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역시 목소리 자체의 소유권이 누구에게 귀속되는지는 아직까지 명확한 판례와 법률적 기준이 부족합니다.
감정의 유산인가, 침해의 도구인가 – AI 음성 복제가 유족에게 주는 영향
기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사망자의 목소리를 되살리는 행위가 정서적으로 적절한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고인의 목소리를 AI로 복제해 다시 듣는 경험은 유족에게 치유와 위로를 줄 수도 있지만 동시에 이별을 방해하고 정서적 혼란을 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2021년부터 AI 음성 복제를 활용해 사망한 가족과 대화하는 서비스가 등장했으며 일부 유족은 이 서비스를 통해 고인의 말투와 어조를 다시 들을 수 있었다고 증언했습니다. “딸아, 밥은 잘 챙겨먹고 있니?”라는 아버지의 음성이 다시 들렸을 때 어떤 사람은 눈물을 흘렸고 또 어떤 사람은 “가슴이 더 아팠다”고 말했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디지털 그리브 테크(grieve-tech) 라고도 부르는데요. 죽음을 기술로 추억하거나 극복하려는 시도라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이 기술은 그 사람을 완전히 떠나보내는 과정을 지연시키고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흐리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특히 미처 작별 인사를 하지 못한 경우 고인의 AI 음성이 만들어낸 말에 더 집착하게 되는 사례도 보고된 바 있습니다.
또한 AI가 말하는 문장은 결국 알고리즘이 구성한 새로운 조합입니다. 고인이 실제로 말했을 가능성이 있는 문장일 수는 있지만 실제로 말한 것은 아니죠. 이 때문에 '고인을 왜곡했다', '고인의 의사와 다르다'는 윤리적 반발이 발생할 수 있으며 이는 가족 간의 갈등으로도 이어질 수 있습니다. 고인의 목소리는 유산이 될 수 있지만 그 사용 방식은 언제나 신중하고 세심한 판단이 필요합니다.
사전에 음성 데이터 활용을 지정하는 방법 – 디지털 유언장의 필요성
이처럼 사후 목소리 활용을 둘러싼 법적·윤리적 문제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개인이 생전에 자신의 의사를 명확히 밝혀두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해결책일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내 목소리는 AI로 복제하지 말아달라”, 또는 “이 영상은 사망 후에도 사용할 수 있다”는 식의 구체적인 지시가 있다면 유족은 이를 근거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최근 주목받고 있는 개념이 바로 디지털 유언장인데요. 기존 유언장은 재산에 한정되어 있었지만 디지털 유언장은 계정, 파일, 음성, 영상, 이미지 등 비물질적 자산의 처리 방식을 포함하는 문서입니다. 이를 통해 사용자는 자신이 남긴 콘텐츠를 누가, 어떻게 사용할 수 있을지를 미리 지정할 수 있습니다.
또한 구글, 애플, 메타(페이스북) 등 일부 글로벌 플랫폼은 계정 사후 처리 기능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구글의 ‘휴면 계정 관리자’에서는 데이터를 누구에게 넘길지, 어떤 데이터를 삭제할지 등을 선택할 수 있으며 이 기능은 구글 어시스턴트의 음성 로그 포함 여부까지 설정 가능합니다.
더 나아가 한국에서도 스타트업을 중심으로 디지털 자산 관리 플랫폼이 등장하고 있으며 음성 데이터까지 포함한 유언장 작성 기능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제도적 준비가 서서히 진행되고 있는 만큼 개인도 이제는 단순히 글이나 사진이 아닌 자신의 목소리까지 포함한 데이터 유산의 설계를 시작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디지털 시대의 유산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다 – 목소리라는 존재의 미래
사람은 목소리를 통해 감정을 표현하고 관계를 유지하며 자신만의 존재를 세상에 각인시킵니다. 디지털 시대에 접어들면서 이 목소리는 이제 기억을 위한 도구를 넘어 복제되고 유통되는 자산이 되었습니다. 이 변화는 ‘사람은 죽어도 데이터는 남는다’는 개념을 더욱 깊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목소리가 어떻게 활용되느냐에 따라 남겨진 이들의 치유가 될 수도 있고 오히려 상처와 논란의 근원이 될 수도 있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사람의 의사와 관계에 대한 존중입니다.
당신이 지금 전화기 너머로 남긴 한 마디, 유튜브 영상에 담긴 강연, 가족에게 남긴 음성 메시지까지. 그것들이 언젠가 당신의 부재 속에서도 살아 움직일 수 있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부터 그 사용 방식에 대해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나의 목소리는 내가 결정해야 한다. 그게 진짜 디지털 유산 시대의 윤리이자 우리의 책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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