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유산을 준비하는 MZ세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세대, 디지털 흔적을 남기는 이유
MZ세대는 과거의 세대들과 달리 ‘죽음’이라는 단어를 삶의 끝이 아닌 또 다른 디지털 기록의 연장선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이 세대는 어릴 적부터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자라면서 디지털 공간에서의 자아 형성이 일상화되었습니다. 삶의 중요한 순간은 인스타그램에 저장되고 생각의 흐름은 트위터로 공유되며 일상의 기록은 블로그나 노션, 에버노트에 담아 놓습니다.
누군가는 브이로그로 하루를 남기고 또 다른 이는 텔레그램 채널에 자신의 철학을 아카이빙합니다.
이러한 행동은 단순한 SNS 활동을 넘어 디지털 유산이라는 새로운 개념과 맞닿아 있습니다. 특히 MZ세대는 생전에 자신이 쌓아온 디지털 자산을 내 삶의 일부이자 누군가에게 남길 수 있는 유산으로 인식하고 있는데요. 이는 단지 기술의 발전 때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투명하게 공유하며 살아온 시대적 환경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하기보다 죽음 이후 남겨질 기록의 방식을 고민하는 이 새로운 세대의 태도는 디지털 유산이라는 개념을 빠르게 확장시키고 있습니다.
SNS는 디지털 묘비다 – MZ세대가 온라인에 흔적을 남기는 방식
오늘날 MZ세대는 SNS를 단순한 소통 수단이 아닌 자신만의 디지털 무덤 혹은 기념관으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인스타그램에 평소보다 더 깊은 문장과 철학적 문구를 남기며 자신의 정체성을 기록하는 모습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이는 블로그에 자서전 형식으로 어린 시절 이야기부터 직장생활, 연애사까지 상세히 정리하고 있는데요. 그들의 행동은 단지 보여주기가 아니라 남기기입니다. 특히 사후에 누군가가 볼 것을 염두에 두고 쓰는 글, 업로드하는 영상, 정리된 이미지 폴더들은 디지털 유산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현실에서는 장례식장에서 고인을 추억하는 앨범을 넘기듯 디지털 공간에서는 고인의 트위터나 유튜브를 통해 그 사람을 추억합니다. 실제로 MZ세대 일부는 자신이 사망한 후 SNS 계정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 누가 계정의 비밀번호를 알고 있어야 하는지까지 고려하고 있습니다. 죽음을 준비한다기보다 남겨진 사람들을 위해 디지털 흔적을 정돈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행동은 특히 디지털 유언장이라는 개념과도 연결되며 자신의 죽음 이후에도 자아를 유지하고자 하는 세대의 의지를 보여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셀프 아카이빙 문화의 확산 – 살아 있는 동안 쓰는 유언장
이제는 더 이상 나이가 들어야만 유언장을 쓸 수 있는 시대가 아닙니다. MZ세대는 20대 후반부터 30대 초중반에 이르기까지 자기 자신의 기록을 스스로 정리하려는 셀프 아카이빙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이들은 종이 위에 유언을 남기기보다 구글 드라이브에 정리된 폴더 하나, 유튜브에 올린 마지막 영상, 블로그에 고정된 글 하나를 통해 자신의 인생을 요약하려 하는데요.
또 어떤 사람은 자신의 인생관이나 철학을 텍스트 문서로 남겨 클라우드에 업로드하고 공유 권한을 ‘사망 이후에만 공개’로 설정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MZ세대는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여 유언장을 기록이 아닌 경험으로 바꾸고 있습니다. 이전 세대는 종교나 철학을 통해 죽음을 해석했지만 MZ세대는 데이터를 통해 죽음을 바라봅니다. AI 음성 생성 기술이나 챗봇을 활용하여 나를 대신해 말해줄 존재를 만드는 시도도 일부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처럼 디지털 유산은 이제 유언장 그 자체를 넘어서 내가 살아온 방식 자체를 남기려는 하나의 문화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디지털 유산이 문화가 되려면 – 제도와 감정의 교차점
디지털 유산이 단순한 기술의 부산물이 아닌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제도적 기반과 감정적 이해가 반드시 병행되어야 합니다. 사용자가 생전에 남긴 데이터는 사후에 타인에게 물려지거나 공개될 수 있으며 이 과정에서 법적 분쟁과 정서적 갈등이 발생할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단순히 계정 삭제 여부를 결정하는 문제를 넘어서 그 콘텐츠의 소유권과 공개 범위, 그리고 수익 분배까지 고민해야 하는 시대가 왔습니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2013년, 한 어머니가 사망한 아들의 페이스북 계정에 접근하기 위해 소송을 제기한 일이 있었는데요. 당시 페이스북은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유족의 접근을 거부했으나 이후 미국 내 30개 주 이상에서 디지털 자산 상속법(RUFADAA)을 제정하여 유언이나 사전 동의가 있을 경우 특정 플랫폼 계정의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도록 허용하게 되었습니다.
국내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있었습니다. 2022년, 유명 유튜버가 갑작스럽게 사망한 후 그의 채널 수익에 대한 유족 간 분쟁이 벌어졌고 해당 유튜브 채널의 관리자 권한을 구글 측이 회복해주지 않으면서 법적 공방으로 이어진 바 있습니다. 이처럼 디지털 유산은 단지 자료 정리 문제가 아니라 소유권과 운영권이라는 민감한 주제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또한 감정적인 측면에서도 디지털 유산은 복합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 최근 일본에서는 AI 음성합성 기술을 통해 사망한 부모의 목소리를 되살리는 서비스가 등장했는데 어떤 이들에게는 큰 위로가 되었지만 또 다른 유족은 이별을 받아들이기 어렵게 만든다며 정신적 부담을 호소하기도 했습니다.
국내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일부 유족은 고인의 유튜브 영상이나 인스타그램 포스트를 보고 위로를 받지만 반대로 지워지지 않는 과거의 게시물로 인해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디지털 트라우마를 겪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한 감정의 양면성은 디지털 유산 관리가 단지 기술적 접근만으로 해결될 수 없음을 보여주는 현상입니다.
현재 국내에는 디지털 장례식 서비스 혹은 디지털 상속 플랫폼들이 조심스럽게 출현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한국의 일부 스타트업은 생전 미리 SNS 계정, 클라우드 파일, 사진 등을 정리하고 사망 시점에 가족에게 전달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만 아직 이들 플랫폼은 제도적 인증이 미비하고 법률적 효력이 불확실한 상태입니다. 또한 이 과정에서 고인의 동의 여부, 유족 간의 이해관계, 데이터 접근권 등의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결론적으로 디지털 유산이 진정한 문화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기술적 편의성뿐만 아니라 법률적 명확성과 감정적 배려가 함께 설계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변화를 가장 민감하게 이끌어가고 있는 세대는 바로 MZ세대입니다. 이들은 생전부터 자신이 남길 기록의 방식과 공개 범위, 타인에게 줄 의미까지 고려하며 유산을 설계하고 있습니다. 디지털 유산은 이들에게 있어 단순한 데이터가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사회에 남기는 마지막 설계도인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