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과 함께 사라지는 디지털 유산, 암호화폐는 예외가 아니다
최근 몇 년 사이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 암호화폐(가상자산)의 보유자가 급증하면서, 암호화폐는 이제 더 이상 기술 애호가만의 자산이 아니다.
특히 중장년층, 자영업자, 1인 투자자들도 다양한 거래소에서 암호화폐를 보유하고 있으며 국내외 암호화폐 지갑 잔고는 많은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 디지털 재산’이 되고 있다.
그러나 이 암호화폐는 고인이 갑작스럽게 사망했을 경우, 가족이 그 존재조차 몰라 영영 사라지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실제로 2022년 캐나다에서는 한 암호화폐 거래소의 창업자가 갑작스럽게 사망하면서, 2천억 원에 달하는 고객 자산이 복구 불가능한 상태로 봉인되었다.
그가 개인 노트북에만 보관하던 지갑 접근 키(private key)를 남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전 세계 암호화폐 투자자에게 '암호화폐도 상속에 대비하지 않으면 사망과 함께 소멸될 수 있다'는 현실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다.
암호화폐는 법적, 기술적 특성상 ‘중앙 통제자’가 없다.
즉, 은행처럼 사망신고를 통해 상속인이 접근하는 구조가 아니라 지갑 주소, 접근 키(복구 구문), 2차 인증 방법 등을 정확히 알고 있어야만 접근이 가능하다.
고인의 생전에 정보가 정리되어 있지 않았다면, 유족이 아무리 법적으로 상속인이더라도 자산을 복구할 수 없는 것이다.
중앙화 거래소와 개인 지갑의 차이, 접근 방법도 다르다
암호화폐는 크게 중앙화 거래소(CEX)와 개인 지갑(Non-Custodial Wallet)에 보관될 수 있다.
중앙화 거래소란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업비트, 빗썸, 바이낸스 같은 플랫폼을 말한다.
이곳에 암호화폐를 보관한 경우, 일정 조건을 충족하면 사망자의 계정에 대해 상속 절차를 밟을 수 있다.
예를 들어 국내 거래소의 경우 사망진단서, 가족관계증명서, 상속인 신분증, 유언장(있다면), 기타 요청서류를 제출하면
심사 과정을 거쳐 상속인에게 잔고를 이전해주는 절차가 존재한다.
단, 이러한 접근은 반드시 거래소 측의 정책과 고객센터를 통해 진행되어야 하며 상속인이 여러 명일 경우 법적 분할 합의나 판결문이 필요할 수도 있다.
반면, 개인 지갑(Metamask, Trust Wallet, 하드웨어 지갑 등)에 암호화폐를 보관한 경우는 훨씬 복잡하다.
이 경우에는 사용자가 직접 지갑 복구용 시드 구문(Seed Phrase)이나 개인 키를 유족에게 남기지 않았다면 지갑에 접근할 방법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키는 암호화폐 지갑의 ‘열쇠’이기 때문에, 누구에게도 공개하지 말아야 한다는 원칙이 있으나 반대로 가족에게조차 전달하지 못한 경우 사망과 동시에 자산이 영구적으로 잠겨버릴 수 있다.
디지털 유산, 생전에 해야 할 사전 준비: 암호화폐 상속을 위한 실천 팁
암호화폐 자산을 상속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사망 전 몇 가지 핵심적인 준비가 필요하다.
첫째, 자산 목록 작성이다. 어떤 거래소에 얼마만큼의 자산이 있는지, 어떤 지갑을 사용하는지 등 최소한의 정보를 정리한 문서를 암호화하여 보관하는 것이 필수다.
이 문서에는 거래소 명, 로그인 이메일, 2차 인증 방법, 지갑 이름, 시드 구문 저장 위치 등을 담을 수 있다.
단, 이 문서를 일반 문서로 남기면 보안 문제가 크기 때문에, 암호화된 USB 또는 디지털 금고 서비스를 활용하는 것이 권장된다.
둘째, 상속 대상자와의 사전 공유 또는 유언장 연계다.
가족 중 암호화폐 개념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기본 개념과 복구 방식에 대해 짧게라도 설명해두는 것이 좋다.
특히 유언장에 “내 암호화폐 자산은 어떤 방식으로 누구에게 전달되어야 한다”는 내용을 명시하면 사망 후 혼란을 줄이고 거래소에 제출할 공식 문서로도 활용할 수 있다.
셋째, 2단계 인증기기(OTP, 보안 앱)의 관리도 중요하다.
요즘은 대부분의 거래소나 지갑이 2FA 인증을 요구하기 때문에사망자의 스마트폰에 설치된 OTP 앱에 접근하지 못하면 로그인조차 되지 않는다.
따라서 OTP 복구 방법, 백업 코드를 함께 보관하거나, 신뢰할 수 있는 가족에게 복구 절차를 알려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암호화폐의 사후 처리, 제도화가 필요한 시점
현재까지 암호화폐 상속에 대한 법적 장치는 매우 미비한 상태다.
한국의 민법상 ‘상속’은 전통적인 금융자산, 부동산, 예금, 유가증권 등을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으며 디지털 자산 중에서도 특히 암호화폐는 소유권 구조, 발행 주체, 보관 방식이 모두 불명확해 제도권에서 다루기 어렵다.
거래소는 민간 플랫폼이기 때문에 상속 관련 요청을 받아도 자체 정책에 따라 판단하고 있으며 하드웨어 지갑처럼 개인이 직접 관리하는 암호화폐는 법적으로도 ‘상속 불가능’에 가까운 형태로 방치되고 있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암호화폐를 포함한 디지털 자산에 대한 별도의 민법 조항 신설이나 유언장과 연계된 ‘디지털 상속 관리 법률’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개인적인 차원에서도, 암호화폐 투자자라면 사망 이후를 고려한 디지털 상속 설계를 반드시 실행해야 한다.
사후 자산이 무의미하게 증발하지 않도록, 평소에 가족과의 의사소통, 정보 보관, 유언장 작성,그리고 거래소·지갑 설정에 반영 가능한 사후 처리 옵션 점검을 해두는 것이 중요하다.
가상자산의 가치가 높아질수록, 우리는 이제 ‘죽음 이후에도 지갑을 여는 방법’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자산 보호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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